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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 리뷰, 추천, 후기 본문
들어가기 전에 :
물론 <닭없이 못살아 모임>의 수석부회장을 맡고있는 내가 속초의 수많은 #닭강정 을 먹어보고 쓰는 리뷰일 수도 있었겠으나 오늘은 안타깝게도 동명이작(?)의 #넷플릭스 #드라마 의 본격적인 리뷰임
시청 계기 :
한적한 금요일 드럼 연습도 못갈 정도로 몸이 아파서 누워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아 오랜만에 잔잔한 영화나 보고 자야겠다...싶었는데 하필 추천받은것이 닭강정이었음 잔잔한거 보다 잠들고싶었는데... 거의 밤을 새다시피했다... 하지만 이 미친 설정 보고 안볼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것임
시놉시스 :
내 딸이 닭강정으로 변하다니!
'모든기계' 사장 최선만은 의문의 사고로 닭강정이 되어버린 딸 민아를 되찾을 수 있을까.
민아를 짝사랑하는 인턴사원 고백중이 그에 합세해 고군분투를 펼친다.
(공식 설정 맞음)
기본정보 :
연출,극본 #이병헌
출연 #류승룡, #안재홍, #김유정
22년~23년 초반까지 촬영 후 24년 3월에 넷플 독점 스트리밍
1편에 35분 정도 길이의 10부작으로 하룻밤만 새면 볼 수 있음
이병헌식 MSG, ‘티키타카’
이병헌 감독을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좋아한다. <극한직업>은 내가 2010년대 이후에 제일 재밌게 봤던 한국 코미디 영화였다. 같은 감독 작품인지는 몰랐으나, 드라마 <멜로가 체질> 또한 재밌게 본 드라마로 손꼽을 정도로 좋았다. 두 작품이 공통되게 좋았던 점은 바로 대사의 '티키타카'다. 지금 이 상황 이 대사에 이 단어가 나오는게 맞아? 싶을 정도다. 자칫 한 번이라도 맥락을 놓치면 이해도 어색하고 웃기에는 불가능한 대화가 판을 친다.
이병헌 작품의 대사들에는 많은 내용이 생략 되어있다. 하지만 오래 같이 산 두 부부가 때로 주어와 목적어 없이도 대화가 가능한 것처럼, 배우들의 대사를 듣고 있자면 그 많은 생략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무릎을 친다. 이병헌 감독 작품의‘호불호’가 명확한 이유다. 취향이 맞아야 재밌다. 맥락을 꾸준이 좇아 온 시청자들은 아! 이래서 웃픈 대사가 되는구나, 싶어서 절절이 울고 웃는다. 나는 그럴때면, 시청자인 나와 작품과 충분한 라포가 생겼다는 확신이 든다. 이병헌 감독의 ‘판’이 제대로 깔렸다는 증거다.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춤추는 사람을 처음 본 것처럼(나는 사실 종종 봤으나),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닭강정으로 변했다는 설정도 처음봤다(이게 더 희귀한 케이스다). 원작이 따로 있으니 설정이야 당연히 원작 웹툰을 따른 것이지만, 닭강정이 닭을 튀긴 게 전부가 아니듯, 그 위에는 반짝거리며 진득한 식감을 주는 물엿도, 한 방울 스치는 참기름의 냄새도, 예쁜 핀을 꽂은 듯한 통깨도 올라가는 법... 이 B급 병맛 스토리에 이병헌 식 티키타카가 얹어지니, 그야말로 A급이라는 평을 주고 싶다.
닭이 좋아야 닭강정이 맛있다
이야기는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1화의 러닝타임이 끝나기도 전에 민아가 닭강정으로 변해버리는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민아의 아버지와 짝사랑남은 이를 위해 원인을 추적하며 사투를 벌인다. 처절한 5일의 개고생 끝에는 기약없는 먼 미래 어느 날에 대한 희망만이 남았다. 그날에 그려질 모습들을 기다리며 눈물을 머금고. 문제 또한 결과만 알고 원인을 모르니, 시청자들도 덩달아 우리의 주인공들이 그놈의 원인을 좀 밝혀내 주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그렇게 또 다음편을 재생하고.... 밤을 새고... 배는 부른데 닭강정은 놓을 수 없고....
연출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가 기가막혔다. 류승룡이 아니면 해낼 수 없던 묵직하게 부담스러운 연기와, 안재홍이 아니면 할 수 없던 가볍고 뻔뻔한 연기가 너무 좋았다. 그림체가 너무 달라서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둘의 케미도 상당했다. 류승룡이 사극톤으로 우렁차게 딸을 지키겠다 소리치면서도, 때론 좀비처럼 죽지도 않고 살아있는 (그러다 어이없게 죽어버리는 최후마저) 가벼운 모습의 간극이 제정신인가 싶다.
안재홍은 왜 노래도 잘해요? 저런 미친 대사를 닭강정을 쳐다보며 애틋하게 던지는 것도 제정신으로는 못할 짓인가 싶기도 하다. 참배우다. 민아가 “백중씨는 얼굴을 바꾸는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을 바꾸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하는 말에 십분 공감하며, 어느새 8화를 넘기다보면 안재홍이 잘생겼다는 착각마저 드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양냉면같이 슴슴하고 담백한데 중독적인 남자....
비법은 각종 재료가 버무려진 양념 소스
나는 마냥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어중간한 배경을 기반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SF물을 참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닭강정>이 좋았다. 비록 하루와 50년의 시절 차이를 견뎌야 하는 비극이 있을지라도, “인간은 배려를 바탕으로 진화하는 존재”라서 어느 먼 미래의 언젠가는 무기와 전쟁과 두려움이 없는 세상에서 우주를 만날거라는 설정도 좋았다. "너희 인간은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의 전쟁을 시작한다"는 말도 좋았다. 전쟁과 비극을 일삼는 인류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이런식으로 들이닥치는, 어이없는 대세계조언조차 감동적이다.
닭강정이 된 민아가 하루의 시간을 외계에서 보낸 후, 백중의 환상을 통해 잠시 그 세계를 전달한다. 정확한 대사가 기억은 안나지만, “거기에도 슬픔은 있지만 모두가 애써 나누려고 하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아”라는 뉘앙스의 얘기였다. 두려워 피하지않고 기꺼이 맞을 수 있는 슬픔을 나눌 수 있을때, 우리는 슬픔에 어떻게 대비하게될까? 아픔과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때, 우리는 과연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어떤 상황에서 마주치게 될까? 영화 <컨택트(Arrival, 2016)>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원형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주인공이 결말의 비극을 알면서도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두려움 없이 현재를 살았던 그처럼, 어느날의 인류도 두려움앞에 단단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드라마 속에는 무언가를 오마주한 흔적이 가득하다. 감독의 전자 <극한직업>의 수원왕갈비통닭 간판과 불륜커플 (또 닭으로 만난...), 대놓고 홍보하는 <멜로가 체질>, 월e, 애니메이션 라바, 인터스텔라, 스티브잡스, 무한도전 노찌롱.... 아는 만큼 보이는 재미도있다(몰라도 무관하다).
우리가 같은(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결말에는 할 말이 많다. 아무튼 뭐 이래저래 기계가 어쩌구 외계인이 저쩌구 해서 50년의 세월이 지나게 되었는데... 그게 또 만만치않게 클리셰 범벅이지만, 아주 진부한 것도 아니었다. 닭강정은 이내 '속도'를 얘기한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어보았는지.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저 행성의 하루가 이 별의 50년과 같아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이동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라는 시간을 똑같이 맞춰 살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닭강정> 또한 같은 색깔의 얘기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하던 시간들이 없다면, 50년의 세월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살아서 만나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함께할 수 있었던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자신의 시간을 양보할 수 있을텐가? 다시금 이 지루한 인생을 견뎌야 하는 거라면, 과연 나는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백중의 답은 간단하다. 기억이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면 아쉬울 일도 없다. 이까짓 슈퍼스타 정도야, 다시 돌아갈 과거(이자 그들의 현재)에 민아의 행복한 시간이 실존하게 된다면 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닭강정>이 보여주고싶었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 이 얘기를 해주는 것만 같다. 같은 속도로 살 수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은 전 우주계 수준의 엄청난 행운이고, 모든 것은 현재 그 자체야! 그러니 이 행운같은 현재를 움켜쥐라고 말이다.
대기의 먼지처럼 떠돌다가 뭉쳐 내린 눈 한 송이처럼, 지구별 여행에서 만난 그대들과의 시간을 허투로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여기에도, 저기에도 사람들이 있다. 내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의 문제다. 당신과의 시간이 소중했다면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내가 그저 길거리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을지로 서태지에 불과했고 닭강정이 그저 한낱 닭강정일 수 있었던 그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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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랜만에 정말 취향이 맞는 드라마를 봤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결이 비슷하니 두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추천할 만 하다. 영화 <극한직업>의 개그포인트나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오묘한 감정선이 맞아떨어졌다면 당신도 이병헌의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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